
SNS 팔로워가 1,000명이 넘어도 정작 힘들 때 전화할 사람이 없다는 느낌, 한 번쯤 받아보신 적 있으십니까. 저는 그 감각이 꽤 오래 이어졌습니다. 연락처는 쌓이는데 마음은 자꾸 허해지는 그 역설. 《상담학자와 함께 읽는 이솝우화》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처음으로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관계의 양이 많을수록 좋다는 믿음, 실제로는
일반적으로 인간관계는 많을수록 유리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풍부할수록 기회도 많고 삶의 만족도도 높다는 식의 이야기가 특히 그렇습니다. 여기서 사회적 자본이란 개인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와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과 신뢰를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믿었습니다. 연락처가 많고, 자리에 불리면 자주 나가고, 어디서든 얼굴이 알려져 있으면 잘 살고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얕은 관계라도 끊지 않으려 애썼고, 부탁이 오면 거절하지 못했고, 연락이 뜸해지면 내가 부족한 탓처럼 느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관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피로감이 먼저 쌓였습니다. 분명히 연결되어 있는데 마음은 더 외로워지는 이상한 감각이었습니다. 사회학자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티핑 포인트》에서, 한 사람이 죽었을 때 망연자실할 만큼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의 숫자는 평균 12명 수준이라고 분석했습니다(출처: Malcolm Gladwell, The Tipping Point). 수천 명과 연결된 시대에 정서적으로 진짜 연결된 사람은 고작 열두 명 남짓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솝우화 속 암사자 이야기가 정확히 이 지점을 찌릅니다. "한 마리만 낳지. 하지만 그 한 마리가 사자야." 마릿수 경쟁을 벌이는 다른 짐승들 앞에서 사자가 한 말입니다. 양적 팽창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하나의 깊은 관계가 백 개의 얕은 연결보다 낫다는 이 단순한 명제가 왜 이렇게 낯설게 들리는지 스스로도 좀 의아했습니다.
관계의 양과 질을 혼동하게 만드는 구조는 지금의 플랫폼 환경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구독자 수, 팔로워 수, 좋아요 수처럼 수치화된 지표가 관계를 평가하는 기준처럼 작동하는 현실에서, 허수(虛數)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허수란 실제 감정 교환 없이 숫자로만 쌓인 관계의 외형을 가리킵니다.
진짜 친구를 구분하는 기준
어려운 상황이 한 번 오면 관계의 실체가 생각보다 빨리 드러납니다. 이건 이론이 아니라 제가 직접 겪어본 이야기입니다. 힘든 시기에 평소 자주 연락하던 사람들 중 먼저 연락을 해온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반면 자주 보지도 않던 지인 한 명이 조심스럽게 연락을 해와 도움을 건넸는데, 그 사람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솝우화의 '나그네와 곰' 이야기가 바로 그 장면입니다. 곰을 만나자 나무 위로 도망친 친구, 혼자 남아 죽은 척으로 위기를 넘긴 친구. 나중에 곰이 귓가에 뭔가를 속삭였냐는 물음에 살아남은 친구가 답합니다. "어려운 처지의 친구를 버리는 사람은 믿지 말라고 하더군."
상담심리학에서는 공감(empathy)과 동감(sympathy)을 구분합니다. 동감이란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되 자신의 위치에서 바라보는 것이고, 공감은 상대가 있는 곳으로 실제로 내려가는 과정입니다. 나무 위에서 내려다본 친구는 곤경에 처한 동료를 동감할 수는 있었겠지만, 공감의 자리로는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진짜 관계를 가늠하는 기준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내가 무너졌을 때 먼저 연락을 해오는가
- 함께 있어도 감정을 숨길 필요가 없는가
- 내 편이 아니어도 솔직하게 말해주는가
- 형편이 좋지 않을 때도 관계가 유지되는가
이 기준으로 돌아보면, 진짜 관계로 남는 사람은 생각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적은 숫자가 명확해지면서 오히려 외로움이 줄었습니다. 막연하게 수백 명과 연결된 것처럼 느끼던 시절보다, 서너 명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이는 지금이 더 든든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농부와 뱀'입니다. 얼어 죽어가는 뱀을 품에 안아 살려줬더니, 기운을 회복한 뱀이 농부 가족을 공격합니다. 선의가 반드시 선의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현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이솝우화가 이렇게 직설적으로 관계의 위험을 다룰 줄은 몰랐습니다. 상담학자의 해설이 덧붙입니다. 은혜를 자신의 권리로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내 영혼이 파괴된다고 느낄 때는 최대한 빨리 거리를 두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요.
관계를 지속하려면 자기돌봄이 먼저다
관계의 질을 높이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저도 초반에 실수를 했습니다. 얕은 관계를 정리하는 데 집중한 나머지, 정작 남은 관계에서도 지쳐가는 스스로를 몰랐습니다. 관계를 줄이면 에너지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는데, 줄이는 것 자체도 상당한 감정 소모를 요구했습니다.
'병든 숫사슴' 이야기가 이 부분을 정확하게 짚습니다. 주변에 친절했던 사슴이 아파서 누웠더니 병문안 온 짐승들이 사슴 주변의 풀을 다 먹어버립니다. 결국 사슴은 병이 아닌 굶주림으로 죽습니다. 타인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을 잃는 구조입니다.
자기돌봄(self-care)은 이기심이 아닙니다. 여기서 자기돌봄이란 자신의 심리적·신체적 에너지를 의식적으로 관리하고 회복하는 일련의 행동을 뜻합니다. 한국심리학회에 따르면, 타인 지향적 성격이 강한 사람일수록 자기 욕구를 억압하다 관계 소진(relationship burnout)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관계 소진이란 지속적인 감정 소모로 인해 관계 자체에 무감각해지는 심리적 탈진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내가 지금 괜찮은 상태인가"를 먼저 묻는 습관이 생기고 나서야 대화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이 오히려 상대에게도 더 솔직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줬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자기를 먼저 돌보는 것이 관계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실질적인 경로였습니다.
물론 관계를 정리하는 기준 없이 무조건 줄이는 건 권하고 싶지 않습니다. 기준이 없으면 정리하는 과정 자체가 또 다른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질문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 이 사람과 있을 때 나는 더 소모되는가, 아니면 회복되는가
- 이 관계는 상호 존중 위에 있는가, 아니면 일방적인 배려로 유지되는가
- 솔직하게 말했을 때 이 사람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이 질문들이 판단을 훨씬 명확하게 해줬습니다.
관계를 많이 유지하는 것이 잘 사는 증거라고 한동안 믿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그 방향이 틀렸습니다. 숫자보다 깊이가 중요하고, 깊이를 만들려면 자기 자신이 먼저 안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주변 관계가 피곤하게 느껴진다면, 관계를 더 늘리려 하기 전에 "내가 괜찮은가"부터 한 번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그 질문 하나가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바꿔줄 수 있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blWF2_WtM&list=PL8LKu_ozzJcrf3gQzpOF9zon0lmWwdmMg&index=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