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뭐 먹고 싶어요?" 라는 질문에 "아무거나요"라고 답한 적이 얼마나 많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이 질문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정말 아무거나 좋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나 자신을 잘 모르는 걸까.
아무거나, 그 편리한 선택의 실체
저는 꽤 오랫동안 '아무거나'를 선택의 미덕처럼 여겼습니다. 까다롭지 않은 사람, 맞춰주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스스로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말에 뭘 할지 고민할 때도 결국 '뭐 아무거나 보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고, 막상 밤이 되면 왜인지 허전한 기분이 남았습니다. 뭔가를 한 것 같은데 아무것도 한 게 없는 느낌 말이죠.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건데, 그게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부담스러웠던 겁니다. 내가 고른 게 별로면 어쩌지, 내 취향이 이상한 건 아닐까 하는 작은 두려움들이 '아무거나'라는 말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 분야에서는 이런 상태를 자기 결정성(Self-Determination) 결여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자기 결정성이란 자신의 행동과 선택이 외부 압력이 아닌 내면의 동기에서 비롯된다는 감각을 말합니다. 이 감각이 흐려지면, 선택 자체가 불안해지고 결국 선택을 회피하는 방식이 습관이 됩니다. 제 '아무거나'가 딱 그 상태였습니다.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에서 진행된 연구를 보면, 이 문제가 단순한 우유부단함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좋아하는 것을 1분 동안 자유롭게 적어보라고 했을 때,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은 항목도 많고 설명도 구체적이었습니다. 반면 행복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좋아하는 것인데도 떠올리는 것 자체를 어려워했습니다(출처: 서울대학교 행복연구센터). 제가 이 연구 결과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나도 그쪽이었구나 싶어서요.
자기인식이 행복을 만드는 과정
'나는 어떨 때 기분이 좋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처음 던진 날을 기억합니다. 뭔가 거창한 걸 찾으려고 했는데, 막상 떠오른 건 별거 없었습니다. 조용히 이어폰 끼고 음악 들을 때, 친구랑 카페에 앉아서 웃으면서 수다 떨 때, 아무 계획 없이 동네 한 바퀴 걸을 때.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때 좀 허탈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다야?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근데 동시에, 그게 진짜라는 느낌도 있었습니다.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확실한 것들.
이걸 심리학에서는 정서 인식(Emotional Awareness)이라고 부릅니다. 정서 인식이란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을 유발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 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빠르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행복한 성격'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 인식의 정밀도가 삶의 만족도와 직결된다는 겁니다.
행복감이 높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때 반응 시간이 유의미하게 짧았다는 실험 결과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이미 내면에서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아무거나'를 남발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선택 앞에서 멈춰버립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조금 다른 시각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걸 찾으세요"라고 쉽게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실제로는 그게 먼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탐색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걸 직접 해봐야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데, 그 경험 자체가 없으면 아무리 질문을 던져도 답이 나오질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방식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습니다.
- 일주일에 한 번, 오늘 가장 좋았던 순간을 하나만 떠올려보기
- 선택지가 주어지면 '아무거나' 대신 딱 하나를 고르고 이유를 말해보기
- 해본 적 없는 작은 것 하나씩 의도적으로 시도해보기
이게 거창한 자기계발이 아니라 그냥 일상에서 나를 관찰하는 연습입니다.
선택과 신뢰, 불행을 만드는 두 가지 습관
좋아하는 걸 모르는 것 외에, 불행을 만드는 또 다른 습관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타인의 행동을 습관적으로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걸 귀인 편향(Attribution Bias)이라고 부릅니다. 귀인 편향이란 타인의 행동 원인을 설명할 때 상황보다 그 사람의 의도나 성격으로 돌리는 경향을 말하는데, 특히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하면 관계 전반이 소진됩니다.
저도 한때는 누군가 잘해줄 때 '저게 왜 저러지, 뭔가 있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먼저 든 적이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런 상태일 때는 관계도 피곤하고, 그보다 제 자신이 더 피곤했습니다. 의심하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많이 든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심리학 연구들을 보면 행복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타인의 행동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누군가 도움을 청하면 정말 필요한 상황이겠거니 생각하고, 실수에는 의도보다 상황을 먼저 봅니다. 이런 태도가 결국 관계의 질을 높이고, 자신의 에너지도 아낍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순수한 의도가 아니면 선한 행동도 의미 없다'는 생각도 이것과 연결됩니다. 기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도 '내가 이걸 할 자격이 있나', '결국 내 만족 아닌가'라는 자기 검열로 아예 행동을 안 하게 되는 것처럼요. 이 완벽주의적 기준이 오히려 선한 행동 자체를 막아버립니다. 어쩌면 때가 많다는 이유로 목욕탕을 안 가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다소 현실적으로 생각합니다. 완전히 순수한 동기만으로 행동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타적 행동을 통해 뿌듯함을 얻거나 관계가 좋아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이고, 그 자체가 나쁜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 선순환이 지속 가능한 선한 행동을 만들어냅니다.
결국 행복을 가로막는 두 가지 습관은 이렇게 정리됩니다.
- 나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 채 '아무거나'로 살아가는 것
- 타인의 선의를 의심하고, 자신의 충동마저 검열해버리는 것
두 가지 모두 방향이 같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저는 뭘 좋아하는지 완전히 선명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예전처럼 '아무거나'로 대답하는 일은 줄었습니다. 오늘 점심에 뭐가 당기는지, 이번 주말에 뭘 하면 기분이 괜찮을지, 이런 작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하다 보니 그게 쌓였습니다. 거창한 행복론보다 이 작은 연습이 실제 하루를 바꾸는 데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한번 해보실 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ZD41OHdx90&list=PL8LKu_ozzJcrf3gQzpOF9zon0lmWwdmMg&index=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