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야 한다"는 생각이 하루에 몇 번이나 떠오르는지 세어본 적 있으십니까? 저는 어느 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어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사소한 것까지 합치면 수십 번이 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제가 왜 항상 무겁고 지쳐 있었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습니다.
당위적 사고가 마음을 짓누르는 이유
심리상담 분야에서는 "해야 한다", "하면 안 된다"는 식의 생각을 당위적 사고(Musturbation)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당위적 사고란, 현실이 어떻든 상관없이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내면의 강박적 명령을 뜻합니다. 합리적 정서 행동 치료(REBT)를 창시한 앨버트 엘리스(Albert Ellis)가 정의한 개념으로, 이 사고 패턴이 불필요한 심리적 고통의 핵심 원인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게 얼마나 은밀하게 쌓이는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을 해야 하고, 출근길엔 정시에 도착해야 하고, 퇴근 후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하나하나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것들이 모두 "규칙"이 되어버리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하루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하고 집에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몸은 이미 한계였는데 머릿속에서는 "이것도 못 했네, 저것도 해야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돌았습니다. 그날은 쉬어야 하는 날이었는데, 저는 쉬는 것조차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의 규칙이 휴식마저 죄책감으로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마음의 규칙이 문제가 되는 경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규칙이 지나치게 많아져서 모든 상황이 의무처럼 느껴질 때
- 규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 스스로를 가혹하게 비판할 때
- 규칙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수용하지 못하게 막을 때
인지행동치료(CBT), 즉 생각과 행동의 패턴을 바꾸는 심리 치료 접근법에서도 이 당위적 사고를 유연한 선호적 사고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 과제 중 하나입니다(출처: 한국인지행동치료학회). "해야 한다"를 "하면 좋겠다"로 바꾸는 것, 그 작은 언어의 전환이 마음의 무게를 실제로 줄여줍니다. 저도 이 방법을 써보고 나서야 그게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완벽주의가 오히려 행동을 막는 역설
완벽주의(Perfectionism)란 어떤 일이든 오차 없이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강박적 성향을 말합니다. 여기서 완벽주의란 단순히 꼼꼼한 성격을 뜻하는 게 아니라, 완벽하지 못할 바에는 아예 시작하지 않겠다는 심리적 마비 상태까지 포함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열등감을 느끼고 우월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완벽주의가 보편적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저도 한때는 꽤 심각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20대 초반,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을 때 엑셀 파일에 분 단위 일정을 짜고, 이동 수단까지 플랜 A, B, C로 나눠서 준비했습니다.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그 여행은 지금도 생애 최악의 여행으로 기억됩니다. 일정표만 쳐다보느라 정작 그 장소의 꽃 냄새도, 불어오는 바람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완벽한 계획이 오히려 여행을 망쳤습니다.
이 역설은 일상에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제대로 못 할 바에는 안 한다"는 생각은 결국 헬스장에 두 번밖에 가지 않고, 책장에 먼지 쌓인 책들을 방치하고, 설거지 더미를 며칠씩 미루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완벽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아이러니입니다.
실제로 심리치료 현장에서는 이런 경우에 아주 작은 행동 목표를 설정하는 방식을 씁니다. "설거지 전부 다 하기"가 아니라 "접시 딱 한 개만 닦기"처럼 말입니다. 이 방법은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는 기법으로, 우울하고 무기력한 상태에서 아주 작은 행동을 통해 심리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치료 원리에 기반합니다. 신기하게도 접시 하나를 닦기 시작하면 나머지도 다 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규칙이 아니라 바람이 움직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집착하면 생기는 일
저를 오래 괴롭혔던 또 다른 패턴이 있었는데, 바로 통제 불가 영역에 대한 집착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저를 어떻게 볼지,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될지. 제가 직접 써봤는데, 이런 생각들에 에너지를 쓰면 쓸수록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에는 집중을 못 하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통제 소재란 어떤 사건의 원인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는지(내적 통제 소재), 아니면 자신이 어쩔 수 없는 외부 요인에서 찾는지(외적 통제 소재)를 나타내는 개념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내적 통제 소재가 높은 사람일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심리적 안정감을 더 잘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짝사랑을 예로 들면 분명해집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상대를 대하는 나의 태도와 행동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할까?"라는 상대방의 마음, 즉 내가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에너지를 쏟습니다. 그 결과는 뻔합니다. 지치고, 불안하고, 아무것도 못 합니다.
저도 20대에 물류창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이걸 뼈아프게 배웠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게 하려고 무거운 짐만 골라 나르고, 가벼운 짐은 거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그 행동이 일부 동료에게는 "나댄다"는 인상을 줬더군요. 미움받지 않으려고 했던 행동이 오히려 미움을 만들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통제할 수 없고, 그것을 통제하려는 시도 자체가 저를 소모시키고 있었다는 것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자"는 기준으로 바꾸고 나서부터, 불필요한 걱정이 실제로 줄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마음가짐의 문제라기보다 습관의 문제였습니다. 매일 조금씩 의식적으로 선택을 바꾸다 보니 어느 순간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결국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제 삶의 상황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만들어온 기준과 생각이었습니다. "해야 한다"를 점검하고, 완벽이라는 기준을 조금 낮추고, 통제할 수 없는 것은 내려놓는 것. 이 세 가지를 하루에 한 번씩만 의식적으로 실천해보시길 권합니다.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됩니다. 오늘 "이게 꼭 해야 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 번만 던져보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상담 조언이 아닙니다. 마음의 어려움이 지속된다면 전문 상담사의 도움을 받으시길 권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hFpQQUHXXTc&list=PL8LKu_ozzJcrf3gQzpOF9zon0lmWwdmMg&index=18